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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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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5 21:10:25, 조회 : 4,993, 추천 : 536 |
오늘은 오전에 베네스다 장애인의 집에 떡국을 나눠주는 봉사를 하러 갔다.
베네스다 장애인의 집에 도착해서 거기 계시던 선생님들께
"저기,, 떡국 나눠주는 봉사 하러 왔는데요." 하니까 이리 오라면서 나를 베네스다 집 앞에 있는 교회 건물로 데려갔다.
교회 건물의 지하층에 베네스다 장애인들이 다 모여있었는데
나를 데려간 선생님께서 "얘 떡국 봉사하러 왔대요." 하고 거기 있던 다른 봉사자분들께 말씀하셨다.
그러자 나한테 내 이름을 쓴 명찰을 주고 앞치마 같이 생긴 무슨 옷을 주면서 입으라 했다.
또 장애인 분들은 긴 생머리를 보면 잡아당기고 안놓으니까 다음부턴 머리를 묶고 오라고 하시면서 내 머리도 묶어주셨다.
그리고는 내 손을 잡고 나를 그 방의 한복판으로 끌고 가시더니 어떤 장애인 분을 찾아서 옆에 앉히면서
"오늘 하루만 이 친구 담당 선생님 좀 해주세요." 라고 하시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떡국 봉사를 하러 갔다가 얼떨결에 하룻동안 '윤지운'친구의 담당 선생님이 되었다.
(사실은 하루도 아니었다. 난 나중에 학원 때문에 도중에 나왔기 때문이다.)
내가 그곳에 '선생님'으로 갔을 때는 이미 많은 봉사자 '선생님'들이 오신 상태였고
아무 것도 모른 채로 처음 보는 지운 친구와 같이 활동을 해야 했다.
이건 뭔가, 하고 보니까 앞에 걸린 현수막에 1박 2일동안 하는 무슨 겨울캠프라는 내용이 써져 있었다.
지운 친구는 내가 자신의 담당 선생님이라고 하니까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내가 민망해하니까 다른 선생님이 "아이구, 좋아서 그래요. 지운아, 선생님이 그렇게 좋아?" 하시면서
지운 친구는 원래 맘에 드는 사람을 계속 쳐다보는 성격이라고 하셨다.
근데 다같이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출 때도 계속 내 얼굴만 보니까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서
"지금 앞에 보고 노래 불러야 되요." 하니까 갑자기 내 손을 놓고 앞으로 나가서 막 뛰면서 춤을 췄다.
지운 친구 말고도 다른 장애인 분들도 신나서 앞으로 나와 선생님들과 춤을 추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그런데 그 분들은 자기 선생님들과 같이 춤을 춰서 나도 지운 친구를 따라 앞에 나가야 하는 건지 고민하다가 결국 안나갔다.
그리고 사실 나는 무교라서 종교적 내용이 담긴 노래를 부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전부가 거의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 어색해서 그 때 좀 주춤거렸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게 지운 친구한테 미안하다.
노래가 끝나고 다들 들어오길래 나도 앞에 가서 지운 친구를 데려왔는데
갑자기 손도 안잡고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하고만 얘기했다.
그래서 혹시 자기는 신나서 춤추는데 '담당 선생님'인 나는 다른 선생님들하고 다르게 반응도 잘 안하고
별로 신나보이는 것 같지 않으니까 나 때문에 기분을 망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미안했다.
다른 선생님들과 장애인 분들은 다 서로 손을 잡고 있는데 지운 친구는 내가 손을 잡아도 자꾸 빼버렸다.
그러더니 혼자서 자기 손을 막 조물조물 하는데 나중에 보니까 상처를 뜯어서 피가 나고 있었다.
덕분에 다른 선생님들이 와서 피 닦아주고 반창고를 찾다가 없어서 사러 나가고
너 또 손에 상처내면 간식 안준다는 둥 한바탕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점심을 먹기 전에 간식을 먹었다.
그 때는 다들 사이좋게 얘기하면서 조용히 간식을 먹으니까 왠지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기분이였다.
간식을 먹고 나서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했다.
노아가 나무로 큰 배를 짓는데 '여러분도 함께 지어볼까요' 하면서 나무 막대기를 두 개씩 나눠줬다.
처음엔 땅바닥을 두드리면서 지었는데 이번에는 망치질을 해보란다.
지운 친구가 그 말을 못들은 것 같았는데 내가 망치질하란 얘기를 안해주니까 계속 땅만 두드리고 있었다.
결국 내 뒤에 있던 대학생 선생님께서 "지운아, 지금 망치질 해보래." 하고 알려주셨다.
그 다음에는 땅바닥 말고 옆에 있는 선생님 등에다가 배를 지어보란다.
이번에도 내가 말을 안하니까 지운 친구는 땅에다가만 폭풍 망치질을 해댔다.
일부러 말 안한 건 아닌데 친구한테 '두드리기 말고 망치질 해보래요', '땅 말고 선생님 등에다가 배 지어주세요'
이런 간단한 말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참 한심했다.
배 짓기가 끝난 다음에는 무지개 나라에 가서 다같이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무지개 다리를 건너니까 여행의 마지막 여정지인 비눗방울 나라가 나왔다.
그곳에선 장애인 비장애인이나 어른 아이 상관없이 비눗방울을 터뜨리며 놀았다.
모두가 함께 비눗방울 속에서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전부 솜으로 만든 작은 아이 같았다.
노아의 방주 여행이 끝나고 이제 점심을 먹으러 갈 시간이었다.
1조부터 차례대로 줄을 서서 식당으로 가는데 지운 친구가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급한대로 얼른 옆에 계시던 어떤 아저씨 선생님께 말씀을 드려서 화장실에 데려다주고 나는 밖에서 기다렸다.
(왜냐면 지운 친구는 남자니까^^)
그 아저씨 선생님은 지운 친구를 잘 챙겨주셨는데 알고 보니 전에 봉사하러 오셨을 때 서로 같은 조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 선생님과 선생님의 담당 장애인 분과 지운 친구랑 나랑 넷이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떡국이었다.
(같이 떡국 봉사를 하기로 했던 다른 애들은 모두 거기 있었다. 친구들이 차려놓은 걸 내가 먹으니까 참 민망했다ㅠㅠ)
점심을 먹으면서 지운 친구의 장난끼 많은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떡국을 몇 숟갈 먹다가 "나 이걸로 안먹어!" 하면서 자기 먹던 숟가락을 내 떡국 그릇에 꽂아 넣고
내 숟가락을 가져가질 않나(나는 아직 먹기 전이었다), "나 이거 안먹어!" 하면서 터진 만두피를 내 떡국 안에 넣질 않나
하여튼 어이가 없으면서도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아저씨 선생님께서 그걸 보시고는 "야, 선생님 그릇에 니 먹던 걸 넣으면 어떡해! 한 번만 더 그러면 혼난다!" 하시고
또 "선생님이 그렇게 좋아?" 하시는데 무슨 유치원 아이 달래는(?) 것 같아서 웃겼다.
내가 떡국을 다 먹고 지운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제 배가 불렀던지 아니면
내가 계속 기다리고 있으니까 좀 미안했던지 아무튼 이제 그만 먹겠다고 했다.
혹시 몰라서 다시 한 번 "이제 그만 먹을 거에요?" 하고 물어보니까 "네" 하길래
남은 음식을 한 그릇에 모으려고 숟가락으로 떡국을 휘휘 젓고 있는데 지운 친구가 그걸 보더니
"아,, 한 번만 더 먹을게요." 하고는 다시 가져가서 먹었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심리 상태였다.
점심을 다 먹은 뒤 아저씨 선생님과 헤어져서 조별로 정해준 장소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우린 2조여서 교회 앞 놀이터에서 찍었는데 단체로 찍는 줄 알았더니 담당 선생님과 둘이서만 찍는 거란다.
오후엔 그걸로 액자도 만든다고 했다. 아무튼 그래서 지운 친구와 사진을 찍으려고
"우리 여기서 사진 찍어야 되는데 지운이는 어떻게 찍고 싶어요?" 하고 물으니까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사진 찍는 카메라 앞을 지나가는 등, 막 여기저기 돌아다니더니
갑자기 놀이기구 위에 올라가서 외나무 다리를 건너고 흔들다리를 건너고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데
날이 추워서 미끄럼틀이 차가웠는지(미끄럼틀이 몸에 비해 작아서 껴보이기도 했지만) 얼굴을 있는 대로
찡그리면서 내려왔다. 표정이 영락 없는 장난꾸러기 초등학생 남자아이였다.
얼굴이든 행동이든 말이든 전혀 장애인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분명 장애를 가진 사람인데 순간 비장애인처럼 보이는 게 너무 신기하고
초등학교 때 장난치던 남자애들이 생각나기도 해서 막 웃었다.
내가 웃으니까 자기도 신났던지 "한 번만 더 해도 되요?" 하고 외나무 다리랑 흔들다리를 건너고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와서는 놀이터 앞에서 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지운 친구는 16살이고 나는 18살인데 내가 더 키가 작아서 슬펐다.)
사진까지 찍고 다시 지하층으로 돌아오니까 내가 학원 가야할 시간이었다.
원래는 떡국 봉사를 그 시간까지만 하고 가기로 했었는데 갑자기 장애인 담당 선생님이 되니까 가기가 미안해졌다.
하지만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니까 거기를 나오려는데 평소엔 가방에 사탕이나 초콜렛 같은 게 한 두 개쯤은 꼭 있다가
왜 오늘따라 없는 건지 뭐라도 하나 주고 싶었는데 아무 것도 못줬다.
지운 친구에게 가서 "지운아, 선생님 일이 있어서 이제 가야 되요." 하니까 안녕안녕 하는데
처음에 나를 지운 친구한테 데리고 갔던 선생님께서 중고등학생 같은 어떤 남자 선생님을 끌고 오시더니
"지운아, 이 선생님 이제 가야 된대. 지금부터 여기 옆에 남자 선생님이 니 담당 선생님이야. 알았지?" 하셨다.
지운 친구가 좀 당황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오후 시간엔 아까 찍은 사진으로 액자를 만든댔는데
그 사람도 처음 보는 장애인과 함께 처음 보는 여자 사진을 액자로 만들려면 이건 뭔가, 하고 꽤 당황스러울 것이다.
"다음에 또 봐요~" 하고 나오는데 비록 얼떨결에 한 선생님 봉사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좀 더 친하게 잘 대해줄걸 하고 많이 후회가 됐다. 그리고 여러가지로 느끼는 것도 많았고
떡국 봉사는 아쉬웠지만 수많은 장애인들을 한꺼번에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서 좋았다.
다음엔 정말로 후회하지 않도록 봉사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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